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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왜냐면] 영화 ‘도가니’: 해법의 다양성과 본질을 찾아서 / 덕성여대 김진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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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장협    조회 3,923회   작성일 11-11-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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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금 거론되는 대책들은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추상적인 사회적 관심만으론 안 된다

영화 <도가니>로 온 나라가 피해자의 억울함에 대한 공분으로 가득하다. 장애로 인해 가뜩이나 세상살이가 힘든데 힘없이 당해야만 하는 그 슬픈 인생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 파장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많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회복지사업법을 고쳐 족벌 위주의 운영체제를 바꾸기 위해 공익이사제를 도입하자고 하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여 ‘항거불능’ 조항을 성폭력특례법에서 삭제하자고도 한다. 각종 성명서에는 그간 우리의 무관심, 장애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을 잊지 않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실태조사부터 착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이러한 대책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들어가면 기업경영이 투명해지고 관선이사가 파견된다고 학교운영 수준이 제고되던가? 그렇지 않다. 언제까지 추상적인 사회적 관심에 호소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다음 제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신을 보호하는 데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돌봄노동자에 대한 관리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영아들을 전문적으로 잘 돌본다는 사람들이 근무태만 내지 아동학대를 한 사례가 부모의 몰래카메라를 통해 최근 방송에 보도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작 당사자는 회사를 옮겨 버젓이 다른 아이를 돌보고 있는 장면도 빼놓지 않았다. 영아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노인·아동·장애인을 돌보는 직업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들이 사람을 상대로 몹쓸 짓을 하면 휴먼서비스 분야에 종사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은 범죄기록국(Criminal Records Bureau)을 설치해서 돌봄노동 종사자의 범죄기록뿐만 아니라 각종 징계기록까지 열람하도록 하여 돌봄노동 과정에서 잘못을 한 경우에는 그 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과거와 습성을 속이고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학교에 취업하더라도 알 방법이 없다. 우리 아이와 형제들을, 우리의 부모님을 돌보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조차 검증되지 않는다면 근본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공익이사제가 사회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이번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논의 지형을 넓히는 데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 이사가 기관의 세부적 운영 행태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1997년 평택 에바다특수학교 사건에서도 국회의원 3명이 이사로 전격 투입되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둘째, 사회취약계층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은 매우 많지만 인권이 침해당했을 때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 물론 학대를 다루는 아동 및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있지만 경찰과의 업무 분할에서 밀려 제대로 역할을 하기 어렵고, 장애인에 대해서는 또 속수무책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미국에서는 인권옹호센터(P&A·Protection and Advocacy)가 주마다 설치되어 있다. 변호사, 장애 전문가, 장애인 부모 등 관련 전문가들이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서비스도 좋지만, 그보다도 우선적으로 억울하게 인권이 짓밟히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자 편에 서서 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든든한 인권옹호자들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의사소통 문제이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 능력이 없거나 있어도 그 진술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사자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에게 쉬운 말과 그림,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 등 시각자료를 보여주면서 질문하면 어느 정도 기억력을 회복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일본·오스트레일리아·독일·영국에서는 벌써 상징적 그림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면서, 이를 관공서·병원·경찰서·소방서·법원 등에 배포하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또한 지적장애를 동반한 중복장애가 많고 그림 도구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방식대로 이야기해 놓고선 서로 말이 안 된다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실태조사도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 지적장애를 가진 청각장애인들은 조사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니 말이 통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도 강구하지 않으면서 대신 직원들에게 인권침해 사례를 물어보니, 과연 얼마나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것인가? 실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왜곡·축소되어 덮여지고, 또 문제없음의 일그러진 축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려질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공익이사제든 성폭력특례법 개정이든 그 의미는 매우 축소되거나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만다. 문제의 본질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항거하고, 맥락적 의미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음을 알렸을 때 두려워 떨고 있는 당사자의 편에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결과 돌봄노동의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면 그 바닥에서 퇴출시켜야 하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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