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왜 미안하다고 하느냐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26
"한 사람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백 씨 아저씨는 어느 농장에서 품삯도 제대로 못 받고 오십 년을 살았습니다. 군청 공무원과 가족이 찾아가서 아저씨를 농장에서 빼냈습니다. 아저씨를 데리러 온 가족은 연세 지긋한 할머니 두 분이었는데, 누나와 고모였습니다. 가족에게 갈 형편이 아니라 월평빌라에 잠시 머물기로 했습니다.
시설 바깥에 집 얻어 살기 바랐고, 더 좋기는 누나와 고모가 사는 마을에 빈 집을 얻어 살기 바랐습니다. 월평빌라에 며칠 머물던 아저씨는 월평빌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반백 년 농사꾼으로 풀 베고 소 먹이며 농장에 살다가 이제 복지시설에서 살게 된 겁니다.
반백 년 농사꾼이 복지시설에서 산다고 그날부터 프로그램이다 뭐다 하며 살 수는 없죠. 그래서 아저씨와 가족과 의논해서 일할 만한 농장을 수소문했습니다.
월평빌라에서 자가용으로 5분 거리, 백 마지기 논농사 짓는 분이 함께 일해 보자 했습니다. 아저씨가 평생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농한기 농번기가 있지만 백 마지기 농장에는 소소하게 할 일이 있어 일 년 내내 출근하는 것으로 계약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해가 져서 퇴근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출퇴근을 도왔습니다.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농장 주인이 아저씨를 모셔다 줄 때도 있었고요.
아저씨는 주로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농장 정리, 거름 내기, 비료포대 옮기기, 논두렁 정리, 풀베기… 그때그때 농장 주인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논마다 물이 찼습니다. 땅이 하늘을 품었습니다. 노을마저 논이 품을 때는 하늘땅이 온통 붉고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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