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행사 일까요? 가족 행사 일까요?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8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05-11 11:43:17
1.
“귀옥(가명) 씨, 아버지 좋아하시는 음식으로 하면 어때요? 어떤 음식 좋아하셨어요?”
“미역국 끓이고……. 아빠가, 고기는 고등어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조갯살 들어간 미역국에 고등어구이 할까요?”
“네. 케이크도 사고요.”
“텃밭에서 가지하고 호박 따서, 가지나물 호박전은 어때요?”
“네. 따고 씻는 거는 내가 할게요.”
돼지갈비, 조갯살, 표고버섯 그리고 고등어 한 손, 귀옥 씨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 대신 아버지 좋아하실 고구마 케이크를 샀습니다. 가지, 오이, 방울토마토, 고명으로 넣을 고추 따서 다듬으니 얼추 준비가 끝났습니다.
“졸업하면 선물도 살 거예요. 지금은 내가 학생이잖아.”
올해 아버지 생신은 딸 집, 월평빌라 201호 귀옥 씨 집에서, 귀옥 씨가 차려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귀옥 씨는 스물여섯에 월평빌라에 이사 왔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았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다 큰 처자가 동네에서 어떤 사고라도 당할까 걱정된다 해서 시설에서 삽니다. 부모님이 가까이 있어 자주 오가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스물일곱에 초등학교 입학했고, 올해(2016년) 서른넷,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 몇 년은 월반했습니다. 입학식, 학부모 간담회, 운동회, 학예회, 졸업식… 학교행사 때마다 부모님 참석하게 부탁했고, 손 하나가 아쉬운 농번기에도 어머니는 왔습니다.
아버지 생신은 다행히 8월 한여름입니다.
부모님이 수박 사 들고 아침 일찍 왔습니다.
“날도 덥고 일 못 하는 때라 일찍 왔어요.”
“잘 오셨어요. 딸 밥하는 것도 보고 그러세요.”
귀옥 씨가 쌀 씻어 밥 안치고, 육수 끓는 동안 미역 불리고 조갯살 씻었습니다. 시설 직원이 옆에서 말로 조금 거들면 잘합니다. 부모님과 살면서 살림했고, 시골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손끝이 야무집니다. 갈비찜, 가지나물, 호박전은 직원이 했습니다. 고등어 구워 내니 생신상 채비가 끝났습니다.
“우리 귀옥이 밥 해 묵는다 캐도 이렇게 잘 거들 줄 몰랐네. 집에 와도 오늘처럼 엄마 거들어 봐라.” 눈여겨보던 어머니가 대견해 했습니다.
수저 세 벌을 놓고, 아버지 어머니 딸이 마주 앉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귀옥이 집에서 생일상을 다 받고. 귀옥아, 아빠가 기분이 좋다.” 음식 장만하는 딸을 묵묵히 보던 아버지가 한 말씀 했습니다. 생일상 소감이고 칭찬입니다.
국 식기 전에 드시라 하고 직원은 방을 나왔습니다. 아버지 생신상 뜻을 아는지, 귀옥 씨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시설에 살아도 자식 노릇하며 살기 바랍니다.
시설에 살아도 여느 부모 자식처럼 삽니다.
2.
민경 씨 고향은 밀양입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 손을 놓쳐 헤어졌고, 그때부터 부산 어느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월평빌라에는 2009년 이사 왔습니다. 그때가 스물셋. 이듬해 기적처럼 부모님을 만났지만 함께 살 형편이 안 되어 떨어져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