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4
농장 일 없는 날 음료수 한 박스 들고 고모 댁에 갔습니다. 아흔 바라보는 고모, 얼마 전에 돌아가신 누나와 친구처럼 지냈는데, 떠나보내고 얼마나 적적하실까 해서 찾아뵙자고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가져오지 마라. 무슨 돈이 있다고.”
“괜찮아요.”
“매형한테는 가 봤나?”
“아뇨.”
“와? 안 갈라고?”
“네. 설에나 갈게요.”
“그래. 설에는 누이한테도 가자.”
“네.”
“이제 누이 없어도 너랑 나랑 이렇게 얼굴 보면 되지.”
“자주 올게요.”
“이렇게 말하니 얼마나 좋누.”
누나 이야기에 아저씨도 고모도 울음을 참았습니다.
“이렇게 왔는데 김치 줄까? 반찬은 있나?”
“있어요. 냅둬요.”
“다음에 김치 없으면 와라. 내 혼자 다 먹지도 못 해.”
“네. 그럴게요.”
작년 10월, 누나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갔습니다. 복수가 찬 채로 누워있었습니다.
“나 누군지 아요?”
“준덕(가명)이 아이가. 내가 여기 있는지 어찌 알았노.”
“선생이 알려줬어요.”
“여기 왜 와. 뭐가 좋다고. 에고. 막내야. 막내야.”
아저씨는 사람 좋은 얼굴로 누나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가. 이제 안 와도 돼.”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떠나는 누나에게 그래도 몇 마디 건넸고, 아흔 바라보는 누나에게 오십 넘은 동생이, 이제 말할 줄 안다고 몇 마디 건넨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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