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김광식 회장님의 기고문입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날카로운 이념 대립으로 굳어지고 있다. 한쪽은 시설 전면 폐지를, 다른 쪽은 현행 체계 유지를 주장한다. 두 진영 모두 장애인의 권리와 안전을 말하지만, 논쟁이 격해질수록 대화는 사라지고 구호만 남는다. 그 사이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은 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할 장애인 당사자의 복합적인 삶이다. 시설을 절대 악으로, 지역사회를 절대 선으로 보는 흑백논리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진정한 자립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성찰 없이 이념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를 도구로 삼는 폭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폐지냐 유지냐’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삶을 직시하고 낡은 체계를 미래형 안전망으로 재설계하는 전환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자립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된 것인가. 거주시설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와 제도는 온전히 그들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 한, 탈시설 선언은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폭력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시설을 지키자는 주장 역시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안일함에 머문다면 변화를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양쪽의 목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이되, 그 가운데 서 있는 당사자의 실존적 필요를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냉혹한 현실의 무게
현재 시설 거주인 상당수는 중증 장애인이거나 도전적 행동을 동반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으로 조기 노화와 함께 복합 만성질환을 앓는다. 이들의 일상은 24시간 집중 의료와 밀착 돌봄의 연속이다. 산소호흡기 착용, 경관식이, 수액 투여 등 고도의 의료 기술이 필수적인 경우도 있다. 이런 돌봄은 의욕이나 선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숙련된 인력, 즉각적인 의료 연계, 장비와 공간이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가능하다. 현실의 무게를 외면한 채 모든 시설 거주인을 획일적으로 이행시키는 것은 탁상공론이다.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화는 존엄을 살리기보다 생명선을 끊을 수 있다.
또한 시설 거주인의 상당수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자기 결정권 행사가 제한적이다. 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역사회에서 살 준비가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결정할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이다. 표현이 어려운 사람의 선택을 대신 단정하는 것도, 아무런 지원 없이 "본인이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도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시설을 떠나고 싶지만 두려운 이들도 있고, 시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오랜 세월 한곳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사’는 단순한 주거 이동이 아니라 삶 전체의 재편이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탈시설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다.
지역사회의 사각지대
탈시설 주장자들은 활동 지원 확대로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방향 자체는 옳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활동 지원 인력의 구조적 기피 현상이 심각하며, 배정받을 수 있는 돌봄 시간은 하루 8~16시간에 불과하다. 하루는 24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은 누가 채우는가. 심야와 주말의 공백에서 갑작스러운 위기가 발생하면 공적 안전망은 사실상 없다.
주거·의료·돌봄이 각 부처에서 분절적으로 관장되면서 의사소통이 불편한 장애인은 관료적 미로를 스스로 헤쳐가야 한다. 주택 지원은 국토교통부, 의료는 보건복지부, 활동 지원은 지자체 등 책임이 흩어져 있어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서류 한 장을 떼는 일도 어려운 사람에게 이 구조는 사실상 진입 장벽이다. ‘제도적 절벽’이 닥치면 당사자들은 방치와 고독사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활동지원사의 이직률이 높고 공급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일관된 돌봄을 받기는 더욱 어렵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돌봄 제공자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자신의 상태와 습관, 신호를 이해하는 사람이 매번 사라진다는 뜻이며, 이는 곧 안전의 문제다. 특히 야간 돌봄의 공백은 심각하다. 최중증 장애인의 경우 밤중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활동지원사가 24시간 상주할 수 없고 야간 응급 의료 시스템도 장애인 특성에 맞게 구축되어 있지 않다.
서구의 교훈
1960~70년대 미국과 영국의 성급한 탈시설화는 퇴소자들을 노숙인이나 감옥으로 내몰았다. 시설을 나온 사람들을 받아줄 지역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채 ‘퇴소’만 앞서간 결과였다. 준비 없는 탈시설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는 역사의 교훈이다. 물론 서구 여러 나라가 이후 지역 기반 서비스를 정비하며 궤도를 수정해 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핵심은 시설을 없앴느냐가 아니라, 없애기 전에 무엇을 먼저 갖췄느냐였다.
한국에서 준비되지 않은 탈시설화는 더 직접적인 위험성을 갖는다. 칠순 팔순의 부모가 중증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다가 극한에 몰려 자녀의 생명을 끊고 자신도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수십 건의 장애인 가족 극단 사건들은 현재의 지역사회 지원 체계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 당사자와 가족이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절망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시설 기능 전환의 네 가지 방향
첫째, 시설은 지역사회 자립의 ‘인큐베이팅 거점’으로 진화해야 한다. 체험형 자립 주택을 확충하고 '안전한 회전문' 제도를 보장함으로써 당사자가 자립을 시도했다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요리, 금전 관리, 대중교통 이용, 이웃과의 관계 맺기 같은 일상의 기술을 단계적으로 익히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쌓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다만 실패했을 때 무조건 받아주는 안전망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나아갈 용기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당사자의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둘째,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전문 집중 케어 센터’로 특성화해야 한다. 의료-복지 복합 플랫폼으로 다각적 통합 돌봄을 제공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심리상담사 등이 협력하여 장애인의 전반적인 건강과 웰빙을 관리하는 모델이다. 조기 노화와 만성질환, 도전적 행동에 대한 전문적 대응은 분산된 지역 서비스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런 센터는 지역사회의 거주 장애인도 필요할 때 단기로 입소할 수 있는 공공 자원이 되어야 한다. 시설이 시설 안의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전문 자원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 재가 장애인 가족의 소진을 막는 ‘위기 대응 및 레스파이트 센터’기능을 갖춰야 한다. 부모나 가족이 긴급 상황에 부닥쳤을 때, 혹은 돌봄 부담으로 극한에 다다랐을 때 단기 휴식과 위기 대응을 제공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입원, 질병, 경조사처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 중증 장애인 가족에게는 곧바로 위기가 된다. 이때 24시간 언제든 연락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가족은 최악의 선택 앞에 홀로 서지 않아도 된다. 이는 가족 해체와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마지막 안전망이 될 수 있다.
넷째, 1인 1실 중심의 ‘가정형 유닛’으로 공간을 재편하고 담장을 허물어 지역사회에 개방해야 한다. 시설 거주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소규모 생활 단위로 공간을 나누면 개인의 취향과 일상 리듬이 존중되고, 돌봄의 밀도도 높아진다. 거주인이 이웃 주민과 만나고, 지역 상점을 이용하고, 문화생활을 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물리적·제도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종사자 전문화와 제도 개편
시설 종사자를 ‘자립 지원 코디네이터’로 재정의하고, AAC(보완대체의사소통)와 PBS(긍정적 행동 지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역량 강화를 돕는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표현 수단이 제한된 사람의 신호를 읽어내고, 도전적 행동의 이면에 있는 욕구를 파악해 환경을 조정하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수준의 전문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며, 종사자의 급여와 처우 개선도 필수다. 낮은 처우와 높은 소진이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어떤 좋은 제도도 현장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전문성 요구만 높이고 보상은 그대로라면 인력 이탈만 가속할 뿐이다.
거주시설의 법적 유형을 자립 지원형·집중케어형 등으로 세분화하고, 기존의 예산 방식을 폐지해 중증도 연동형 차등 수가제와 성과 연동형 기금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을 중심에 두는 행정 혁신이다. 현재는 거주 인원 수에 따라 지원하기 때문에 최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일수록 손해를 보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돌봄 강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드는데도 지원은 그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체계에서는 실제 필요 돌봄량에 따라 차등 지원하고, 당사자의 역량 강화 및 지역사회 참여 수준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시설들이 단순히 관리 차원의 기관이 아니라 당사자의 성장을 도모하는 기관으로 변할 유인이 생긴다.
이행의 원칙: 속도보다 순서
기능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첫째, 모든 이행의 출발점은 당사자 중심의 의사결정 지원이다. 의사소통 지원 도구와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를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둘째, 지역사회의 주거·의료·돌봄 기반이 검증된 뒤에 이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목표 인원만 채우는 방식은 서구의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셋째, 소규모 시범사업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며 확산해야 한다. 넷째, 이행 이후에도 사후 관리와 점검을 이어가 누구도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거주시설의 개방성과 지역통합
기능 전환된 거주시설은 담장을 허문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고, 시설 거주인이 지역 행사에 참여하며, 지역 자원과 거주시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지역 주민에게 강당과 카페, 체육 공간을 열고, 거주인은 지역 학교·복지관·상점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를 통해 지역사회가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거주시설이 고립된 섬이 아니라 지역의 일부가 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통합은 장애인이 지역으로 ‘나가는’ 일만이 아니라, 지역이 장애인에게 ‘다가가는’ 일이기도 하다.
존엄의 조건
복지의 푯대는 탈시설 그 자체가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인간다운 존엄과 안전,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자신의 건강 상태와 삶의 가치관에 따라 지역사회 독립주거와 전문 집중 돌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일부는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고 싶을 것이고, 일부는 시설에 머물기를 원할 것이며, 상황에 따라 오갈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그 촘촘하고 따뜻한 그물망 위에서만이 우리는 ‘장애인의 존엄한 삶’이라는 약속을 완수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삶을 중심에 두는 정책적 전환이며, 사회 전체의 책임감 있는 실행을 요구한다. 시설을 지키느냐 없애느냐를 묻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디에서 살든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